Artist's Essay

2012. 3. 멸치 대가리를 따며 나를 보다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3-02-24 12:56
조회
91
몸통은 오른쪽, 내장과 대가리는 왼쪽.
손에 익을 만큼 해체를 했음에도 반대로 던져놓고 한숨이다.
가끔 의도치 않게 반으로 나뉘어 스스로 척추를 드러내기까지 하는 그 속을 누가 알아줄까.
연하디 연한 비늘은 연하디 연한 마음 같아 부드러운 손길에도 쉽게 상처나 버리고,
분리된 대가리의 수백 개의 눈알들은 깜박임 한번 없이 뚫어지게 노려본다.
탄식으로 쩍 벌어진 아가리에선 먼 바다의 노래 같은, 모른척하고 싶은 숙제 같은, 거품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 나의 욕망은 잘못인가? ”

한때는 너도 등 푸른 생선으로 은백색 반짝이며 찬란히 바다를 누비던 시절이 있었지...
그렇게 일탈을 욕망하다 그물에 걸려 뭍으로 나와 말라 비틀어져야 비로소 역할을 다하게 되는
비참한 숙명.
이제 꼬들꼬들 말라버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박제 같은 신세로, 바다를 꿈꾸는 멸치 같은 나.
멸치 대가리를 따며 나를 본다.

그리고 이제 말라버린 멸치를 다시 물에 넣어 흐물흐물 우려낸 나를 나는 마신다.
홀짝홀짝, 때로는 벌컥벌컥 막소주처럼.
떨어져 버린 비늘, 분리된 뼛조각, 가끔 불청객으로 합류한 대가리와 내장까지
비릿하고 찝질하게 변조된 바다를 마신다.

이렇게 몸에서 용해되지 못하고 낯선 선창가의 젓가락 장단처럼 표류하는 나를 모으고 모아
내 안의 괴물을 잉태했다.
언젠가 내 안의 괴물이 내 몸보다 커져버려 온몸의 구멍으로 삐질 거리며 나오거나,
뻥하고 터져버리는 그날을 가슴 벅차게 꿈꾸며 산다.
참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영혼의 통각까지 마비시키는 꿈을...

나는 산모이며 아기이고 산파이고.... 그렇게 나는 혼자 태어날 것이다.
괴물과의 불편한 동거를 가슴 으스러지게 사랑하며 태교를 하고 있다.